시인의 숨결을 따라 걷는 길

오늘은 서촌 투어의 날이다. 경복궁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윤동주 문학관 앞에서 내리면서 본격적인 여정이 시작되었다. 서울의 옛 정취가 살아 있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시인의 자취를 만나게 된다. 윤동주 문학관은 그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원래 이곳은 수도 가압장으로, 아파트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가압장과 물탱크가 2012년,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마치 세월을 견뎌낸 벽돌 하나하나가 시인의 시어처럼 느껴졌다.
시인의 삶, 시의 무게

윤동주 시인은 1917년 중국 명동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보낸 만주의 풍경은 훗날 그의 시 세계에 깊이 녹아들었다. 1925년 명동소학교에 입학한 이후, 1936년에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의하며 숭실중학을 자퇴하고, 용정 광명중학부 4학년에 편입한다. 이처럼 그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갔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고, 1941년에는 졸업을 맞아 19편의 시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준비하지만, 일제의 한글 탄압으로 인해 출간하지 못한 채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에 편입학하지만, 독립운동 혐의로 친구 송몽규와 함께 1943년 체포되고 만다.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그는 1945년 2월 16일, 스물여덟의 나이로 옥사한다. 그의 유해는 북간도 용정의 중앙교회 묘지에 안장되었고, 그해 3월 7일에는 송몽규 또한 옥사했다. 세상을 떠난 뒤인 1948년, 유고 시 31편이 묶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의 삶은 짧았지만, 그 속에 담긴 저항과 순수, 고뇌와 신념은 무겁고도 깊었다.
시인의 공간, 시인의 하늘
문학관의 내부는 그의 생애만큼이나 절제되고 의미 깊게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 '시인의 채'에는 윤동주 시인의 일상과 관련된 사진 자료, 친필 원고 영인본 등이 9개의 전시대에 배열되어 있다. 그곳에 서서 시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시구들을 바라보니,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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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전시실 '열린 우물'은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물탱크의 상단이 열려 있어, 하늘과 바람과 별이 드러난다. 폐쇄된 공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열린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이 전시실은 시인이 꿈꿨던 자유를 상징하는 듯하다.
반면 제3전시실 '닫힌 우물'은 물때가 남은 벽면과 두꺼운 철문, 차가운 감옥을 연상케 하는 데크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후쿠오카 형무소의 감방을 모티프로 하여, 시인의 고통과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 이 두 공간의 대비는 윤동주의 삶과 죽음, 꿈과 억압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는 죽지 않는다
윤동주 시인은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가 남긴 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다. 윤동주 문학관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니다. 그것은 시인의 내면과 시대의 아픔, 그리고 시가 가진 힘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시는 죽지 않는다. 그가 남긴 말처럼, 우리는 오늘도 하늘과 바람과 별을 바라보며 그를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