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개와 만초천의 역사
옛 이름을 간직한 고개, 당고개

서울 곳곳에는 ‘당고개’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네 곳이나 있다. 종로구 창신동의 도당마을, 성동구 하왕십리동의 신당 일대, 노원구 상계동 불암산 자락의 미륵당 자리, 그리고 용산의 당고개가 그것이다. 모두 공통적으로 신앙적 성격을 가진 당집이 있던 곳이라 ‘당고개’라 불렸는데, 오늘 걸어본 용산 당고개는 지금은 사라진 문배산 기슭에 있었다. 문배산은 지금 흔적조차 찾기 어렵지만, 그 아래를 흐르던 만초천과 함께 오랫동안 용산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곳이다.
만초천의 흐름과 변천사

만초천은 서대문구 인왕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안산 앞을 지나 영천시장, 적십자병원, 서소문 네거리, 서부역, 청파동, 삼각지, 당고개 주변을 거쳐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합류했다. 총 길이는 7.7km에 달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용산 8경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경치가 아름다웠다. 특히 여름철이면 게가 많이 서식해 게잡이 명소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만초천이 범람하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고, 이후 제방을 높게 쌓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 물자 수송과 철도 확장 공사와 맞물려 하천의 흐름이 크게 바뀌었다. 청파로 일대 철길 서쪽으로 물줄기를 돌리고 직강화 공사를 하면서 원래의 굽이진 흐름은 사라졌다.

사라진 하천 위의 도시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단계적으로 만초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었다. 1985년에는 복개된 자리에 전자상가가 들어섰고, 그 이전에는 농산물 도매시장이 있어 상인들과 농민들로 북적이던 공간이었다. 이후 시장은 가락동으로 이전하여 오늘날의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이어졌다. 지금은 만초천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용산 미군기지 내부 일부 구간에는 아직도 물줄기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풍경
만초천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삶터와 직결된 공간이었고, 게잡이와 같은 생활문화가 살아 있던 곳이었으며, 서울의 풍광을 대표하던 명승지였다. 그러나 도시화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하천은 복개되어 도로와 건물로 덮여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그 위를 걷고 있지만, 발밑에 흐르던 옛 물줄기의 숨결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마무리하며

당고개와 만초천은 단순히 지명과 하천의 역사가 아니라, 서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화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장마철 범람으로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의 도시 확장,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복개까지. 그 속에는 서울 시민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은 사라진 물줄기지만, 그 기억을 더듬어 걸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서울 풍경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