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
조선의 위기를 막아낸 장수, 권율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조선은 연이은 패배와 수도 함락으로 나라 전체가 깊은 위기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백성과 군을 하나로 이끌며 조선을 지켜낸 인물이 바로 권율 장군이다. 그는 한성 탈환을 목표로 몰려드는 왜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한강과 가까운 행주산성에 진지를 구축하고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다.
권율 장군은 정규군뿐 아니라 의병과 승군, 여성들까지 하나로 모아 조직적으로 전투를 이끌었다. 그 결과, 1593년 2월 12일,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몰려든 왜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이 전투가 바로 ‘행주대첩’이다. 무기와 병력 면에서 열세였지만, 뛰어난 전략과 백성의 단합이 만들어낸 극적인 승리였다. 왜군은 3만명 조선은2300명 으로승리를 이끌었다.
역사와 추억이 깃든 행주산성
관군
의병
오늘날의 행주산성은 그 위대한 승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 현장이다. 대첩문을 들어서자 권율 장군의 동상과 함께, 관군과 의병, 승군, 여성들이 함께 싸운 모습이 담긴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든 민중의 승리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승군
대첩기념관에 들어서면 당시 사용된 다양한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화차, 총통, 신기전 등 조선이 자랑하던 무기들이며, 특히 변이중 선생이 문종 원년에 설계한 화차의 모형은 우리의 독창적인 군사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시된 무기들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조선을 지켜낸 생생한 증거다.
행주대첩의 흔적을 따라 걷다
기념관 관람 후, 우리는 덕양정에 올라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며 잠시 숨을 돌렸다. 이어지는 행주대첩비 탐방에서는 초건비, 중건비, 재건비까지 총 세 개의 기념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초건비는 1602년, 당대 문장가 최립이 지은 글에 한석봉이 직접 글씨를 써 더욱 뜻깊다. 중건비는 마모된 초건비의 내용을 보존하고자 1845년 행주서원에 세운 것이다. 가장 최근인 1963년에는 경기도민들의 성금으로 덕양산 정상에 세운 행주대첩비가 세워졌는데, 비문은 신석호가, 제목 글씨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산성의 마지막 구간에서는 충의정을 지나 행주토성으로 내려왔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까지 이어진 이 요새는 그 자체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준다. 투어의 마지막에 이르러 우리는 선조 때 광해군이 분조로 내려와 임진왜란 속에서 민심을 안정시키고 마비된 행정 을 다시 세우며외적을 물리친 이야기를 나누며, 만약 인조반정이 없었다면 광해군의 정치가 어땠을지에 어떤 역사가 펼쳐 졌을까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았다.
시대를 지킨 정신, 오늘을 비추다
행주산성과 권율 장군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승전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민중과 리더의 정신을 보여준다. 그날의 땀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땅을 누릴 수 있다. 조용히 산성을 내려오며, 그 정신을 가슴에 새긴 하루였다.